‘낙원’에서 나와 지역에서 살기

작성일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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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에서 나와 지역에서 살기일본 왓빠 모임의 50년
배용진 기자  |  cowalk1004@daum.net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산속 시설에 격리돼 있던 시절, 그것이 이상하다고, 지역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 학생이 있었다. 시설에 살던 장애인과 지역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모임은 시작됐다.

 

‘낙원’에서 지역으로

1960년대 말 일본에 대규모 장애인 수용 시설들이 들어섰다. 지자체별로 지역에서 분리된 산속 이곳저곳에 ‘콜로니(colony)’를 세우고 ‘장애인에게 낙원을’이란 표어를 내세우며 시설 입소야말로 장애인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1959년 9월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히며 태풍 베라(Vera)가 지나갔다. 5,0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많은 학생 단체가 재난 복구 지원 활동을 했고, 이후 다양한 봉사와 학생운동으로 활동을 이었다. 1969년 당시 대학교 1학년이던 사이토 겐조 씨는 장애인 시설에 봉사활동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을 산속에 고립 시켜 놨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건 사람이 사는 방식이 아니에요. 격리죠. 가장 작은 규모의 시설에도 100명 넘는 장애인이 수용돼 있었어요.”

 

1971년 사이토 씨와 친구는 빌린 돈으로 협소한 집 하나를 빌려 시설에 있던 장애인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왓빠 모임’의 탄생이다. ‘왓빠(わっぱ)’란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고리처럼 이어지자는 뜻이다. 장애인을 사회와 철저히 분리하던 사회에서 장애인과 함께 사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생활을 지속하려면 일해야 했다. 연금제도 등 장애인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제도가 없었고, 기업도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일거리를 받아와 간단한 조립 등 가내수공업식 일을 하며 10년 이상 생활을 유지했다.

 

유지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왓빠 모임은 두 가지를 계획한다. 첫째는 빵 만들기 사업이었다. 회원 한 명이 빵 공장에서 수습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1984년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은 ‘왓빵’을 만들었다. 처음엔 회원 모두가 먹고살 만큼의 수입을 올리지 못했지만, 점차 판매가 늘며 모임을 대표하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다른 한 가지 계획은 행정조직에서 보조금 받기였다. 애초 왓빠 모임은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이 있었다.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입소 시설을 지향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통소 시설(주간 보호 시설)이 도입됐고, 왓빠 모임은 단체를 법인화해 통소 시설 지원금을 따냈다. 사회복지법인이 됐어도 모임은 기존 운영 방식을 고수했다. 의사 결정도 이사회가 내리지 않았다.

 

내용전부보기: http://www.cowal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48

원문출처: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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